전시서문
Exhibition Foreword
2023 타이틀 매치는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하되 ‘차용한 것을 차용’하거나 ‘하찮고 연약한 뒷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우리를 둘러싼 스펙터클을 재구성하는 이동기, 강상우 작가를 초청합니다. 작년 조각에 이어 회화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리얼리즘과 추상이라는 큰 흐름 사이에서 미술사를 자유롭게 참조하고, 진지한 실험과 위트있는 태도로 대중매체에서 발생한 조형과 무의식 그리고 사회적 현상을 탐구해 온 한국적 팝을 다시 정의해볼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는 동시대 미술의 화두 중 하나일 대중매체 이미지 실험을 초기부터 지속해온 이동기 작가와 그 실험의 반대쪽을 비추는 강상우 작가의 작품을 되짚어보고, 두 작가의 신작을 통해 경계의 확장과 돌파를 시도하고자 합니다.
위 내용은 전시 소개 자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The above is an excerpt from the exhibit introduction.
이동기, 〈가상정신병〉,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x100cm
〈가상정신병〉은 이동기 작가가 영국의 애시드 재즈 그룹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1996년 발표곡 〈버추얼 인새니티(Virtual Insanity)〉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떠올린 작품입니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이동기 작가의 〈하얀 방〉(2001)과 비슷한 공간이 등장하고, 사방이 막힌 이 방의 바닥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보컬 제이 케이(Jay Kay)는 이 위에서 걷거나 뛰면서 ‘신기술에 대한 가상의 광기(Virtual Insanity)’를 노래합니다. 이동기 작가의 작품 중 공간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벽과 바닥으로 확장하여 선보입니다.
이동기, 〈수배자〉, 1998, 캔버스에 아크릴릭, 117x91cm
〈수배자〉는 당시 강도 살인 탈옥범 신창원의 수배 전단을 차용한 작품입니다. 1998년 당시 신창원은 탈옥하여 몇 년째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는데,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나서 나중에는 그가 범죄자인지 스타인지 모호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앤디 워홀 역시 〈13명의 지명 수배자〉(1964)라는 작품 시리즈를 제작했었는데, 워홀의 수배자는 마릴린 먼로 같은 스타 초상화의 반대 지점 혹은 어두운 면을 다룬 작품입니다. 신창원은 스타와 수배자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작품에 반대되는 개념을 공존시키고자 하는 이동기 작가에게는 적합한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손을 사용하는 페인팅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작가의 주관을 배제시키기 위해 원본 흑백 사진 톤의 변화를 선을 이용해 기계적으로 따라 그리는 방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테크놀로지/손’이라는 이분법의 인식을 드러내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98년에 수배자 페인팅 작품을 완성한 후 〈데몬스트레이션-버스(Demonstration Bus)〉(성곡미술관, 1999)라는 그룹전에 참여하며 당시 가나아트센터에서 운영하던 ‘미술관-순회버스’ 외부에 이 작품을 시트로 인쇄해 부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시 오픈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신창원이 극적으로 검거되었습니다. 버스는 원래 운행 경로대로 청와대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경찰은 ‘불법 부착물’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인쇄물을 제거하려고 했다. 결국 인쇄물을 작가가 떼내어 원본 페인팅과 함께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외부에 붙였던 시트를 재현하여 소개합니다.
이동기, 〈버블〉, 2008, 캔버스에 아크릴릭, 250x400cm
〈버블〉은 2006년도부터 시작하여 지속되고 있는 시리즈로 이 작품은 그중 대형 작품입니다. 마치 세포 분열하듯 무한 복제되는 아토마우스는 작가가 ‘반복’과 ‘증식’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마치 한 곡의 노래 안에 반복되는 가사, 즉 훅(hook)과 같은 것으로 설명됩니다. 디지털 매체 시대의 조형적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버블〉은 〈가상정신병〉이나 ‘일그러진 아토마우스’ 시리즈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입구 바닥과 〈버블카〉에서도 버블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동기, 〈스모킹〉,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x160cm
〈스모킹〉은 이동기 작가가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담배 연기 부분을 1960년대 미국의 사이키델릭 포스터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사이키델릭 포스터는 60년대 말 히피들의 약물 문화와 관련이 있고, 그들이 약물을 통해 정신 세계의 심연에 도달하려 했었다는 점에서 〈가상정신병〉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은 60년대 당시의 옵 아트(Optical Art)에서도 영항을 받았는데, 작가가 담배 연기 부분을 추상적 화면으로 만들면서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도록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동기, 〈파워 세일〉,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360x840cm
〈파워 세일〉은 이동기 작가의 ‘절충주의(Eclecticism)’ 시리즈 중 초기의 대형 작품입니다. 작가는 2010년부터 이러한 스타일의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절충주의’는 이동기 작가에 따르면 주로 건축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스타일을 하나의 건축물에 결합해 놓는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동기 작가는 평소 대중매체에서 포착되는 여러 시대의 이미지를 스크랩해두었다가 이를 화면에 중첩시키곤 하는데, 그 풍경이 발생시키는 다의성, 더 나아가 해석 불가능함, 언캐니함이 작가와의 게임에 관객을 참여시킵니다.
이동기, 〈희생〉, 2006, 캔버스에 아크릴릭, 90x90cm
〈희생〉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초상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이동기 작가가 보기에 그 사진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과 비슷해 종교적 도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때문에 작가는 이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비루하고 저급한 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주사기를 결합합니다. 주사기는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난 메이플소프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현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마약 문화를 은유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토마우스들은 미술사를 오가며 텅 빈 신체에 무엇이든 담아왔는데, 이렇게 사물화된 신체는 정체성뿐 아니라 몸을 교체하는 근미래의 모습을 예견합니다.
이동기, 〈꽃밭〉, 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x160cm, 개인 소장
〈꽃밭〉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일명 텔레토비 꽃동산으로 불리며 아토마우스가 출현하는 또는 당도한 장소로서 여러 형태로 변주됩니다. 이동기 작가는 텔레토비가 텔레비전이라는 전자제품을 의인화했다는 점과 그들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는 장소가 매우 인공적으로 꾸며진 자연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인공/자연 또는 문명/자연과 같은 이분법을 해체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플라스틱 세계에 대해 인공, 가상 즉, 영화 〈아바타(Avatar)〉(2009)등 컴퓨터로 만들어진 세계가 애니메이션과 실사 사이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조형적으로는 2D 대중매체와 모바일 스크린의 감각을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강상우, 〈몬산토 미래의 집〉, 2023, 플라스틱, LED, 황동, 천, 스티로폼, 아크릴릭, 목재, 석분점토 위에 에나멜 페인트, 70x100x50cm(2),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신작인 〈몬산토 미래의 집〉은 《여자의 변신은 무죄》 전시에 소개되었던 복고적 주방 가구 스타일과 그 시대적 관계로부터 아이디어가 파생되어 1950년대 다국적 농업 기업인 몬산토(Monsanto)가 상상한 미래의 집과 그 주방 형태, 플라스틱이라는 재료 등을 소재로 구상되었습니다. 과거에 꿈꾸었던 미래는 현재인데, 그 미래와 현재는 같은 모습인가? 현재로 이어지지 못하고 탈락한 미래에 대해, 과거의 상상과 실제인 현재가 서로 다른 이미지를 주고받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간극이 시간으로 확장되어, 서로 다른 다중우주를 구성합니다. 내부에는 동시대 아이돌 그룹의 군상이 추상형식으로 기념비화되기도 하고, 작가의 유년인 1980년대 일본의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먼 미래의 화려한 액정 디스플레이 이미지들이 캡져되어 등장하기도 합니다.
강상우, 〈홍익볼〉, 2023, 스티로폼에 카드보드지, 석분점토, 모델링, 퍼티, 아크릴릭, 에폭시, 73x250x135cm,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신작 중 하나인 〈홍익볼〉은 작가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이었던 1997년에 해태제과의 홈런볼 포장지 디자인을 평면 회화로 해석했던 작품을 입체화의 방법으로 복각한 작품입니다. 당시 교수님이었던 고(故) 이두식 작가가 상단부에 배트를 들고 오른쪽 하단부의 작가에게 “옷 잘 입도록”이라는 말씀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된 지금 보내는 제도권 미술교육에 대한 농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상자들과 공통적인 시대,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고 그때의 정서를 환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작품 표면에 홍익대학교 개교년도, 당시 홈런볼 가격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강상우, 〈새로 나온 액션 페인팅〉,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13x226cm
〈새로 나온 액션 페인팅〉은 1980년대 치약 광고와 핸드폰의 지문 뭍은 스크린을 중첩시킵니다. 고해상도로 박제되어 유튜브에 영원히 상영되는 광고와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를 매개하는 스크린의 존재를 가시화합니다.
강상우, 〈Leftover〉, 2017, 혼합재료
〈Leftover〉는 작가가 10여 년 동안 다뤄왔던 전시들의 주요 토픽과 주제 의식으로부터 낙오된 잡음들과 일종의 ‘사고의 파편들’을 다루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이 오브제들은 한때 전시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것들로, 단순히 쓸모없고 하찮은 것이 아니라 작가의 본질과 내면을 보여주는 커다란 에너지로 작동합니다.
강상우, 〈그의 살과 뼈〉, 2023, 스티로폼에 에폭시, 아크릴릭, 에나멜 페인트, 332.5x302x80cm,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신작 〈그의 살과 뼈〉에서 강상우 작가는 한국 만화사에서 독창적 스타일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이현세의 그림체, 특히 펜터치의 현란한 완급 조절이 분출하는 에너지를 물리적으로 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대형 사이즈로 변환되어 거대하고 추상적인 덩어리로 변한 이 ‘이현세 시그니처’는 원래의 2D 평면 이미지에서 표면 높이의 변화를 통한 볼륨 조절로 터치감을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빨대를 꽃아 망점을 입체화하였습니다.
강상우, 〈D(M)ental〉, 2017, 석분점토에 컬러콩테, 180x53x60cm
이동기, 〈맥아더〉,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220x250cm,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맥아더〉는 이동기 작가의 신작으로 한국, 동아시아 근대사와 관련 있는 맥아더 장군의 보도사진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캔버스에 회화 작업으로 변환한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에서 때로는 영웅으로 때로는 적으로 모두 다른 평가를 받는 맥아더 장군의 이미지와 이런 여러 맥락을 통해 관객이 과연 작품과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인지 질문합니다. 앤디 워홀이 ‘죽음과 재난’(Death and Disaster) 시리즈를 통해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접하는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듯, 커다란 전쟁을 이끌었던 이 인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개성적인 개인이 아니라 보도사진에 등장한 인물로서 무감각해지고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위 내용은 전시소개자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The above is an excerpt from the exhibit int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