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 - 2007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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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윤형근 화백은 군사독재 정권으로 말미암은 국내의 불안정한 정세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잠시 한국을 떠나 파리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윤 화백은 자신이 탐구해 온 ‘천지문(天地門)’ 회화가 유럽 미술계의 맥락 속에서 힘을 잃지 않는 동시에 고유의 독자성과 보편적 감수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는 좁은 작업실이라는 파리의 제약된 환경 아래서, 순수한 마포 또는 면포의 여백에 물감을 묽게 스미게 하여 천지의 합일과 회화적인 밸런스를 추구했던 기존과는 약간 다른 방식을 취했다. 동일한 물감과 기법을 쓰면서도 한국 고유의 재료인 한지를 활용하여 자신의 작업 의도를 보다 섬세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추구해 나간 것이다. 약 1년 반 동안 파리에 체류한 후 윤 화백은 스스로가 천착해 온 회화의 내용과 어법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한국에 귀국하였다.
윤형근과 파리의 두 번째 인연은 2002년 장 브롤리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이다. 한국을 방문했던 화상 장 브롤리가 그에게 파리의 레지던스를 제공했고, 윤 화백은 현지에서 3개월간 머무르며 대형 회화들을 제작해 이를 동년 가을 장 브롤리 갤러리에서 전시하였다. 1991년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와의 만남 이후 자신감을 갖고 더 확고하며 구조적인 형태의 화면을 구축하던 윤 화백은 한층 더 깊이 있게 성숙해진 결과물을 이 파리 전시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그의 회화성의 정수가 1980년대 초 1차 파리 시기에 한지의 작은 화면 속에서 세심하게 구현되었다면, 2000년대 초 2차 파리 시기에는 대형 캔버스 위에 보다 과감하고 힘 있게 표출된 셈이다.
파리는 올해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으며, 뉴욕과 런던을 거쳐 세계 현대미술의 거점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2023년 초에는 윤형근의 작품전이 데이비드 즈워너 파리에서 개최되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현시점에 이 도시와 인연이 깊은 윤 화백의 파리 시기 전후 작업들을 재조명하는 일은 윤형근 작업 세계의 변모를 국제적이고 신선한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윤형근 화백은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Ultramarine)’과 땅을 상징하는 ‘다색(Umber)’을 섞어 가공하지 않은 천 혹은 한지 위에 스며들고 번지게 하는 작업으로 세계 속에서 한국의 단색화 미학을 대표해왔다. 작업의 과정에서부터 결과까지, 작위와 기교가 배제된 그의 작업은 삶과 예술의 일치를 추구한 작가의 이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기백 있으나 겸손하고,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윤 화백의 인품이 그의 작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하겠다. 뉴욕 도널드 저드 파운데이션, 텍사스 치나티 파운데이션,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 영국 헤이스팅스 컨템포러리,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 미술 기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개최되었다. 생전 윤 화백은 상파울루 비엔날레1969, 1975, 베니스 비엔날레 1995 등 영향력 있는 국제 행사 및 전시에 다수 초청된 바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글렌스톤 미술관,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