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solo
폴리곤 플래시 OBT
정시우 큐레이터
연분홍빛 비행물체가 구멍을 통과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이를 뒤따르는 무리가 개체를 향해 물리적 포격을 가하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위협은 전류와 결합해 폭발하며 적색과 청색으로 빠르게 교차 점멸한다. 2 혹은 16자리 빛의 신호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전자총(Electronic Gun)을 통해 화면 너머로 송출된 빛은 현실과 누화(crosstalk)되며 맞닿은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후 90년대 후반 다양한 루트로 국내에 유입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도입부에는 ‘TV를 볼 때는 방을 밝게 하고 TV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경고문이 삽입되었다. 이것은 두꺼운 종이에 적색과 청색의 셀로판지를 붙여 조악하게 만들어낸 애너글리프(anaglyph) 방식의 입체안경을 넘어 위치 정보와 기울기, 높낮이를 계산해 HMD(Head Mounted Display)를 통해 현실을 유사 경험하는 오늘날, 현실을 환하게 밝히고 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련의 사태를 경고하고 있는 것일까?
<폴리곤 플래시 OBT>(Polygon Flash OBT)는 1997년 일본에서 발생한 닌텐도 쇼크, 혹은 폴리곤 쇼크로 불리는 사건을 그 시작점으로 한다. 폴리곤은 다각형이라는 사전적 정의 외에 3D 컴퓨터 그래픽의 단위를 이루는 가장 작은 조각을 의미한다. 또한, 비디오 게임 원작의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의 캐릭터로, 네트워크에 서식하는 특이한 종인데 주인공 일행은 이 포켓몬을 포획하기 위해 네트워크에 잠입하고, 추격 과정에서 적색과 청색이 빠르게 점멸하는 폭발 효과가 일본 전역에 브라운관을 통해 방영되었다. 문제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이 애니메이션 효과가 포켓몬의 주 시청 연령인 아동에게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포켓몬을 시청하던 700여 명이 발작을 일으켰고, 이후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상매체에서 이러한 효과를 제한하는 등 현실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폴리곤 쇼크는 가상공간이 브라운관을 통해 현실에 보낸 일종의 신호이자 현실에 개입한 상징적 사건이다. 더는 현실과 가상이 화면을 경계로 온전히 분리되지 않고, 상호 참조하고 동기화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브라운관 너머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대상화된 세계와 현실이 동기화해 양쪽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비정상적인 속도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유예된 대가로 대형 참사와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떠안았다. 기나긴 불황의 입구인 1998년 출범한 새 정부는 IT산업을 국가 중심 산업으로 선포하고, 경쟁력 확대를 위해 초고속 인터넷환경을 단기간에 구축한다. 이로써 음성, 텍스트 기반의 전화회선 시대를 뒤로하고 전 세계가 높은 대역폭으로 연결되는 시각 이미지에 기반을 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가의 주도로 마련된 웹이라는 시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흡수하기 시작한 동시대 20, 30대 작가들의 작업은 독특한 경향을 보인다. 개인의 체험과 작가적 독창성을 강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웹이라는 공공영역에서 참조된 이미지를 데이터 차원에서 조합하고 완성한다. 그러나 결국 이미지데이터는 전시장이라는 실재 환경에 반응해 물성을 획득하고 우상적 신체를 지니게 된다. 본 전시는 이러한 새로운 경향의 작업과 전시환경의 관계에 관해 질문한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우리는 육안으로는 그 구성단위를 파악할 수 없는 매끄럽고 납작한 화면을 통해 새로운 풍경을 유사 경험하고 있다. 이 손바닥만 한 기기를 활용하면 단순히 화면을 출력하는 것 외에도 위치 정보, 기울어짐, 높낮이를 계산해 혼합현실, 혹은 현실적 가상을 구현할 수 있다. 현실을 참조해 대상화하는 가상현실과 구분된, 전시공간에 현실과 가상이 동등한 위치를 점하는 환경을 구현할 수 있을까? 데이터 영역에 존재하는 시각 이미지는 전시공간이라는 실재적 한계 안에서 변환과 출력의 과정을 거친다. 이미지데이터는 공간과 물성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오브제, 공간이 아닌 현실과의 간극이 극도로 얇아진 화면 너머의 세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대중이 웹을 통해 이미지데이터를 소비하고, 실재보다 유사 경험의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하드웨어로 존재하는 전시 환경은 시각예술의 확장된 형식을 담기에 적합하지 않다.
<폴리곤 플래시 OBT>는 동시대 이미지 생산과 소비 구조를 게임산업의 방식을 전유하는 3단계 기획에서 OBT(Open Beta Test)에 해당한다. 본 전시는 동시대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의 궤적을 관찰하고, 매개체인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해 전통적인 작업 방식으로 수렴되지 않는 동시대적 감각을 대입하는 방법론에 관한 전시이다. 동시대의 이미지 생산과 소비 양상을 앱을 통해 드러내고, 한정된 사용자에게 앱을 제공해 매체를 특정하지 않은 사용 예시를 확보하고자 한다. 이미지 시뮬레이터인 선셋밸리 애플리케이션은 본 전시에서 하나의 조건이자 매개체로 전시의 중심에 놓이고, 사용자이자 베타테스터인 작가는 앱을 활용해 이미지데이터를 생성하고, 전시환경에 맞는 신체로 변환한다. 기획자는 레벨 디자이너로서 실재 환경과 비물질 이미지데이터가 앱을 경유해 동기화되는 구조를 전시로 드러내고 물성과 원본 없는 시각 이미지와 현실 사이를 탐험하는 시각적 긴장을 불러낸다. 현실에서 가상으로, 가상에서 현실로 각자의 방향에서 반대로 흐르는 사이의 어느 지점을 본 전시의 좌표로 설정한다. 데이터 영역에선 공간의 구분이나 물성이 의미를 가지지 않고 손쉽게 각 층위를 관통하거나 하나의 덩어리로 묶이고, 물성의 조건이 역으로 흐를 수 있다. 레벨 디자이너인 기획자는 테스터인 작가들에게 3개의 층위로 이루어진 인사미술공간을 데이터 환경으로 가정해 하나의 덩어리로 설정하고, 각 작가에게 기대되는 매체의 반대 지점의 물성을 구현하길 요청했다. 작가들은 이미지 시뮬레이터인 선셋밸리를 활용해 이미지의 형태, 크기, 위치를 무작위로 지정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문이삭은 데이터 영역에 랜덤하게 생성된 이미지를 휴먼스케일이 아닌 인사미술공간의 축척에 대입해 일종의 구조체이자 벽의 역할로 공간에 출력한다. 권영찬은 참여작가와 디자이너의 경계에서 건물 외벽의 현수막, 입구의 유리문, 전시장의 벽과 바닥,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 표면을 작업의 영역으로 삼아 전시를 구성하는 텍스트를 분산 배치한다. 김동희는 실재 공간에 수평으로 층위를 쌓던 기존의 방식을 선회해 또 하나의 공간을 스크린 안에 구현하고, 공간을 유영하는 궤적을 영상으로 풀어낸다. 개별 작업은 인사미술공간이라는 실재 환경에서 일종의 표피처럼 서로의 영역에 최소한의 지지체로 달라붙는다.
동시대 창작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작가의 역할은 이미지데이터를 수집하고, 적합한 방식으로 변환, 제작하는 일종의 편집자로 이동한다. 동시에 기획자는 작업의 조건과 전시의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역할이 확장된다. 가상의 시공간이 브라운관을 매개로 일본 전역에 송출되었던 폴리곤 쇼크와 같이 <폴리곤 플래시 OBT>는 전시환경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신호를 송출한다. 점멸하는 적색과 청색의 빛을 통해 데이터 영역의 비물질 이미지가 실재적 환경과 완전히 분리되고 대상화된 것이 아닌 현실과 끊임없이 상호 참조하는 이미 당도한 현실화된 가상임을 인식할 수 있길 희망한다.
김동희(1986) 홍익대 판화과 졸업. 학부 재학 당시 교내 버려진 공간을 이용한 공간 작업인 <프리홈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다양한 동료 미술인들과 협업하며 기능성을 상실한 공간에 새롭게 기능을 부여하는 작업들을 진행, 주목 받아왔다. <나열된 계층의 집>(2014), <오페라 코스트>(2015), <오픈 스튜디오>(2017), «3 볼륨즈» (시청각, 2017) 외에도 그 사이사이 다채로운 공간 작업을 선보이며 독특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권영찬(1990)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과 협업한다.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일민미술관, 2016), «서울 바벨» (서울시립미술관, 2016) 등의 전시 디자인을 했다.
문이삭(1986) 국민대 입체미술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Passion. Connected.» (아카이브봄 2017), «구성하고 그리고 쌓고» (공간 사일삼 2016)에서 개인전 개최. «사물들: 조각적 시도» (두산갤러리 2017), «ACC네트워크 플랫폼:아시아 쿨라 쿨라-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6)등 단체전 참여.
정시우(1984) 어설프게 회화를 전공하며 도상 애호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상봉동에 위치했던 무슨 공간 교역소를 공동 운영했으며 인사미술공간, 플랫폼엘, 캔파운데이션에서 일했다. «루밍 셰이드»(산수문화, 2017), «헤드론 저장소»(교역소, 2016),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등을 공동으로 기획했다. 현재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권영찬, PF OBT Text, 벽과 바닥에 비닐 시트 접착, 가변크기, 2018 문이삭, 비포 선셋,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8 김동희, Camera Test : Tracking Line 2F, 단채널, 4분 42초, 무한반복, 1428.48x803.52mm, 모션 그래픽 최규석, 2018 김동희, Camera Test : Tracking Line B1, 단채널, 4분 42초, 무한반복, 1195.8x336.3mm, 모션 그래픽 최규석, 2018
폴리곤 플래시 OBT 2018.5.18 – 6.16 인사미술공간
참여작가 – 김동희, 권영찬, 문이삭 기획 – 정시우 디자인 – 권영찬 번역 - 김실비 사진 - 김익현 영상 – 안성석 웹사이트 – 홍진훤 영상장비 – 웨일디지털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인사미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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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미술관 Museum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89 89, Changdeokgung-gil, Jongno-gu, Seoul
Phone: 02-760-4721~3 Fax: 02-760-4723
※ 관람시간 화,수,목,금,토,일요일 11:00 - 19:00 ※ 휴관일 매주 월,일요일, 매년 1월1일, 설날, 추석 연휴 ※ 관람료 무료 ※ 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