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Creators

양수아 Su a Yang

  • 출샌연도 Born in

    1920 - 1972

  • 국가 Nationality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Country flag of REPUBLIC OF KOREA

  • 등록작품 Works Registered

    0

  • 등록전시 Exhibitions Registered

    1

  • 웹사이트 Website

    -

  • 연락처 Contact to

    -

호남 추상화단의 선도자였던 양수아는 1920년 전남 보성 겸백 출생으로 보통학교 때 일본인 교장의 추천으로 일본에 건너가 소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1942년 동경 가와바다畵學校 洋畵科를 졸업하였다. 1953년부터 72년까지 목포․광주․서울․여수 등지에서 24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3회의 회고전(87 현산미술관, 95 광주 무등일보 갤러리,04 광주시립미술관)이 있었다.

단체전으로는 [신창생파전](1940, 동경 銀座菊屋갤러리) [白漁會展](1941, 銀座菊屋) 조선일보 현대작가초대전, 6.25때 지리산 빨치산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목포사범학교, 문태중학교, 목포여자중학교, 광주사범학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53년에 ‘목포양화연구소’,61년부터는 광주에서 ‘양수아 화실’을 열어 교단 밖에서도 후학 양성에도 각별한 열의를 다하였고, 전라남도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72년 급성간경화로 타계하였다.

…고난의 시대에 태어나 질곡의 삶을 살았던 그는 해방공간(1945-49)의 혼돈을 견뎌내야 했다. 6.25동족상잔의 깊은 상처를 입고 끝 모르는 소외와 가난에 더하여 정신적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또한 한 시대의 지성으로 한국전의 와중에서 빨치산에 몸을 실었던 불운한 참여주의자이자, 24회의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화혼(畵魂)을 불사른 전업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다.

… (중략)

국전을 외면한 지방작가, 인기와 타협하지 못하는 반골, 제도권 밖의 그가 중앙화단에서 바로 평가를 받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앙 중심의 한국미술사 기술(記述)이 그의 미술사적 위상, 추상미술에서의 선구적 위치, 그리고 그가 호남 미술계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합당한 관심을 두지 못한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양수아의 정신세계는 마치 번질거리는 드넓은 새벽바다의 일렁임을 상기케 한다. 태양은 아직 구름 뒤에 숨어 있지만 그것이 다시 구름 위로 붉게 떠오르는 때면, 바다는 붉다가 노랗다가 백금처럼 하얗게 다시 변하는 천의 얼굴이 된다.

그는 현실에서 지고 예술에서 되살아났다.

  • 이석우 <예술낭인(浪人) 양수아-역사의 상흔조차 잠재울 수 없었던 예술투혼> 《격동기의 초상-양수아 꿈과 좌절》(`05, 광주시립미술관․부국문화재단)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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